오직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한 번 읽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에 가서 손에 잡히는대로 빌린 책.
제목이 영~ 맹숭맹숭이다..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어떤 여자아이의 평화로운 어린 시절 회상씬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약간의 타임워프를 하고, 좁은 아파트에 살던 성년이 된 여주인공이 자신의 멋진 사촌과 여행길에 오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나간다. 우아하고 영롱한 정서속에서 탁월한 감성묘사로...
아, 그렇게 행복한 여자의 이야기는 아니구나. 그래도 뭐..이 여자아이는 흔치 않은 불행을 딛고 살아 남아서 지금은 평화?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녀가 겪었던 그 흔치 않은 일들이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된 집에 외동딸로 공주처럼 자라다가..겪는 상상 밖의 이야기들.
강신술이 나온다.
강신술?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을 정도였다. 웬 강신술?
여주인공 어머니가 마녀학교 출신인데 강신술을 이용해서 떼돈을 번다.(일본엔 정말 마녀학교라는 게 있을까?)
마녀학교에다 강신술이라니~그것도 강신술을 이용해 사업을 하고 엄청난 부를 쌓고 더 큰 부를 탐하면서 강신술을 계속 사용하다가~ 끔찍한 비극을 겪는 어느 집안 이야기..
강신술을 이용해 어떻게 떼돈을 벌 수 있냐고? 나도 첨엔 그게 궁금했다. 강신술 얘기 나올 때부터, 아니 왜 귀신 따위는 불러내는 거야? 뭣 때문에? 왜? 왜? 마녀학교 출신이라서?? 설마 돈 때문에? 그랬는데,,,결국~~~ 돈 때문이었다. 수입할 물건들을 놓고 강신술을 통해 불러낸 혼령에게 묻는다. 어떤 걸 수입해야 대박이 나겠냐고~
요즘 사람들이 점집에 가서 접신한 무당한테 사업 대박나게 해달라고 부적 쓰고 점 치고 굿하는 거랑 비슷한 이유다.
그런데 강신술이 실패한 거다. 그 실패가 의미하는 것은, 접신을 못했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혼령을 불러내지 못하고 엉뚱한 귀신이 내려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게 실패한 강신술은..이상한 혼령과 접신해 버린 마녀학교 출신의 여주인공 어머니로 하여금 끔찍한 사고를 치게 하고만다. 강신술에 참여했던 자신의 남편을, 귀신이 씌었다고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스스로 칼로 목을 그어서.
이 끔찍한 사고가 그려지기까지, 아니 (여주인공 머리 속에) 생각나기까지의 과정이, 여행길, 얼마나 잔잔하고 감성 깊게 그려지던지..암울하고 답답한 과거, 끔찍한 기억이 얽힌 곳들을 여행하는데도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녀(여주)의 영혼이 아름다워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죽었다는; 친모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억도 없는 채 구천을 떠도는 어리고 깨끗한 영혼...
그 혼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령은 혼광이라는 곳에 들어간다..그런데 갑자기 죽어버린 경우는?...
(제목도 특이하다, '그녀를 위하여'도 아니고 그녀에 대하여...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걸까? 간결하고 깔끔하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섬세하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것처럼 글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작가가 묘사한 세상이, 정서가 그렇게 빛 속에서 영롱하게 맺힌다. 그게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번역본에서도 살아남는 걸까? 저들의 문체는...!!
내용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문체가 살아남는다.
하루키 책 읽고 그의 문체에 반해서,뼈에 사무치게 빼어난 (그의 문체에) 글솜씨에 놀랐던 적도 있었는데,,
하루키의 글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묘사해도 탁월한 글이 되어버린다.
마치 뛰어난 사진작가는 신문지 구겨진 걸 찍어도 그의 피사체가 예술로 표현되는 것처럼.
이 사람도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작가니까 글 잘쓰는 글쟁이니까 아무거나 일상이라도 자신의 멋진 문체로 표현해야만 하는 그런 게 아니라..
다 읽고서 알았다. 이글은 꼭 써야만했던 글이라는 걸...
구원이 없는 이야기에...구원을 주는 진혼곡..
그 진한 핏빛 진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느 가련한 영혼에게 바치는 눈부시게 영롱하고 촉촉한 진혼곡..
인간이 이렇게 (슬프지만) 아름다운 의무를 수행할 수도 있는 거구나..
.................................................................................................아래는 엮은 이의 말 인용...........................
사람으로 태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아마도 죽음이겠지요.
누구든 피할 수 없는데 선택할 수도 없다는 딜레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낳는 동시에, 때가 되면 촛불이 꺼지듯 고요하게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도 낳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에감할 수 없어 두려움도 공포도 느낄 새 없이, 또 고요하게 죽기를 바라는 소망조차 품지 못한채 죽어 간 나이어린 소녀가 있다면, 그것도 자신을 낳아 준 엄마 손에 죽어야 했다면 어떨까요? 어린 소녀는 자신에게 가해진 불가해한 폭력 앞에 그저 무너지는 길밖에 없겠지요. 죽음이란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그 영혼이 구천을 헤매겠지요. <그녀에 대하여>는 그렇게 죽어 간 한 소녀, 유미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유미코에게 닥친 죽음처럼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다양한 죽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르지 않은 출근길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또는 즐거운 산행 길에 사소한 헛발질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이유로 발발되는 사고에 젊은 목숨이 희생되는 일도 있습니다. 무심결에 그은 성냥이 대형 화재로 번져 애꿎은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그런 때, 어떤 이유로도 해명되지 못할 그들의 주검은 어디를 헤매게 될까요? 괴로워할 새도 기도할 새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맞딱뜨린 죽음에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제자리를 찾지 못해 얼마나 헤매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찌릿찌릿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 이모와 쇼이치가 유미코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떤 아름다운 이가 이 모든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은 이들의 넋을 꿈에서라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이 죽음의 빛 속으로 인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0년 무더운 여름날 김난주
처음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하필이면 이책일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내용의 책.
덕분에 작가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하게 되어버렸다.
이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안 빼고 다 읽고 싶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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