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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with-akira@hanmail.net 2011. 10. 28. 01:00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과 함께 투표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박원순 당선인이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시민운동 이력과 성장배경 등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당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거 당일 투표소에 동행한 미모의 아내 강난희(54)씨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향후 2년8개월 동안 서울시 행정을 책임지게 될 박원순 당선인은 사업가 기질을 시민사회운동과 절묘하게 접목시킨 진보시민단체의 대표주자다.

박 당선인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멤버였으며 인권변호사를 시작으로 출마 직전에는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소인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았다.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부른다.

△ 실천적 시민운동가…자금 유치 능력 탁월

그의 실천적인 시민운동은 보수진영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원순 후보는 대담집에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부터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여권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던 뒷얘기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박 당선인은 이미 알려진 대로 국민의 정부 시절과 참여정부 시절 정부와 대기업 등 시민사회단체와 미묘한 관계에 있는 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박 당선인의 한 지인은 "친분이 있는 기업인들은 박 상임이사를 보고 종종 `기업 경영을 했으면 일가를 이뤘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수백 명의 싱크탱크가 함께하는 참여연대를 이끌고 희망제작소 같은 전국적인 사업을 경영해본 준비된 CEO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그는 선거 기간 내내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2000년에는 대안운동을 위해 `아름다운 재단`을, 2001년에는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했다.

"커피를 어떻게 하면 싸게 사서 이익을 남길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제3세계 농부에게 어떻게 하면 커피 값을 제대로 지불해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까 고민한다"는 말에서 그가 펼치고 있는 대안운동의 철학을 가늠할 수 있다.

2006년에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같은 해부터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아 지역사회운동, 청년벤처운동, 소기업지원운동 등을 벌이며 공공정책을 연구했다.

△ 시민운동 경험 공약에 접목…정치력도 뛰어나

그의 연구활동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공약에도 묻어났다. 예컨대 시민사회운동 시절 소기업 발굴·육성을 위해 펼친 `희망수레운동`은 `청년 일자리 1만개 창출을 위한 발전기금 조성`이라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시민사회운동을 행정에 접목시킨 것이다. 그는 "사회적 기업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엔 고유의 상품 개발이 핵심"이라며 특유의 사회적 기업론을 얘기한다.

희망제작소 등 속한 조직에서는 `상임이사`라는 직함보다 `원순 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조직활동의 창의성을 높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이나 직급 등이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그의 소신이 반영됐다.

시민운동가에서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야권통합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던 부분에서는 그의 `단호한 정치력`을 엿볼 수 있다.

그를 외유내강의 소탈한 리더십만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몸살이 날 정도록 강행군하는 그의 `일중독`에 주위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는 것.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끌고 나가면서 몰두하면 끝장을 보는 승부사 기질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는 전언이다.

△ 검사 그만두고 인권변호사로…안철수 신뢰 깊어

박 당선인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 재학시절이던 1975년 유신체제를 반대하며 할복 자결한 서울대 출신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투옥되면서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으며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지검에서 1년만 근무하다 퇴직했다. "사람들 잡아넣는 게 영 불편했다"는 게 퇴직 이유였다.

검사 퇴직 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권인숙 성고문사건, 부산 미문화원 점거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등 굵직한 인권 관련 재판 변호인을 맡았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엔 부패정치인 낙선운동, 소액주주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을 주도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받은 것에도 그의 정치적 수완이 작용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안 원장의 출마설이 나오자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출마 당위성을 내비쳤고 50% 지지율을 얻고 있던 안 원장에게 양보를 받아냈다.

박 당선인과 가까운 한 정치학과 교수는 "박 후보는 2000년대 이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제3의 지대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펼치며 대중적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정치적 그의 선견은 여느 다선 국회의원 못지않게 치밀했고 전략적"이라고 전했다.

△ 투표장 동행한 `얼짱` 아내…강난희씨 화제

한편 박원순 당선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거 당일 투표소에 동행한 부인 강난희 씨의 미모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26일 오전 박원순 당선인은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집 근처인 서울 서초구 방배3동의 제3투표소 방배웨딩홀에서 투표를 했다. 강 씨는 박 당선인이 지난달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이후 처음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부인 강씨가 박 후보와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되자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강씨의 미모에 네티즌들은 찬사를 보냈다.

네티즌들은 각종 게시판에 "박 후보가 장가를 잘 갔다", "진정한 능력자네요", "단아한 한국형 미인이다", "나이에 비해 진짜 어려보인다" 등의 글을 올리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강씨의 과거 사진등과 현재 모습을 비교하며 성형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강씨는 국문학을 전공한 뒤 지난 1982년 박 당선인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강씨는 지난 1999년부터 인테리어업체 `P&P디자인`을 운영해 왔으며, 이 회사는 최근 경영 상태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가윤 기자 / 뉴스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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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들의 선택, 경기도민으로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자랑스런 젊은이들의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