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利’를 얻는 자와 ‘義’를 얻는 자의 리더십

with-akira@hanmail.net 2009. 11. 17. 12:44
‘利’를 얻는 자와 ‘義’를 얻는 자의 리더십
드라마 <선덕여왕>에 담긴 소통과 민생의 제왕학
[1047호] 2009년 11월 11일 (수) 하재근 | 문화평론가

▲ 덕만은 백성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꿈을 공유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아래는 <선덕여왕>의 한 장면.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를 끄는 데는 덕만과 미실의 흥미진진한 수 싸움 대결, 꽃다운 화랑들, 위험한 남자 비담 등과 함께 정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덕만과 미실의 리더십 스타일, 치국 스타일 등을 보며 시청자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마침 현실 정치에 불만이 고조된 시점이라, <선덕여왕>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지도자상을 보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커졌다. <선덕여왕>은 단지 두 집단의 힘과 힘이 부딪히는 차원만이 아닌, 덕만과 미실의 정치관까지 세밀히 그려냄으로써 그런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선덕여왕>이 제왕학을 새로 쓰고 있다는 호평까지 나왔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신권위주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지난해부터 회자된 주요 키워드들이 그런 인상을 갖게 했다. 강경 진압, 원천 봉쇄, 언론 장악, 여론 탄압, 소통 없는 사업 강행 등의 키워드들이 그렇다. 강력한 공권력이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대이니만큼 <선덕여왕>을 통해 가장 먼저 부각된 것은 소통을 중시하는 덕만의 리더십이었다.

덕만은 어렸을 때 세계 문물이 교차하는 중국 서역의 실크로드 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그녀는 곳곳의 상인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며 소통의 문화를 익혀나간다. 같은 시기 미실은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누르거나 혹은 죽이며 권력을 굳혀간다. 덕만에게는 귀와 입이 있었고, 미실에게는 위압적인 눈빛과 칼이 있었다.

<선덕여왕>은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말한다. 덕만과 미실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람들을 규합해간다. 미실은 귀족의 특권이라는 이(利)로 사람들을 모은다. 반면에 덕만이 사람들을 얻는 코드는 기본적으로 의(義)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위험한 캐릭터인 비담의 경우에는 의가 아닌 정(情)이지만, 이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김유신의 경우에는 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정을 끊어내고 의를 매개로 덕만의 사람이 된다. 그렇게 형성된 각각의 집단을 둘은 전혀 다른 리더십으로 이끈다. 미실의 집단은 철저한 상명하달식 위계질서를 따른다. 여기서 미실은 압도적인 지배자이다. 반면에 덕만의 집단은 훨씬 수평적이다. 미실은 남을 힘으로 누르지만 덕만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월천대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특징이 극명히 드러났다.

민생을 대하는 덕만과 미실의 철학 크게 엇갈려

이런 차이는 백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미실은 백성과 대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배할 뿐이다. 미실은 지식을 독점하고 정보를 조작한다. 백성은 미실이 주는 안전과 밥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살면 되는 존재이다. 반면에 덕만은 실패를 겪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백성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꿈을 공유하려 한다. 그 꿈은 현재와는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희망이다. 미실은 희망이라는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덕만은 백성들과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덕만은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깨우기 위해 지식을 공유한다. 천문 정보를 백성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천문 정보는 미실에게 정보 조작의 원천이었다. 그것을 통해 미실은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해 절대 권력을 얻으려 했다. 덕만은 미실의 그 지식 독점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구조를 부숨으로써 누구도 절대 권력이 될 수 없도록 막는다. 그리고 남는 것은 좀 더 개방적인 소통의 리더십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은 호감을 느꼈다.

제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민생을 챙기는 것이다. 소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백성을 굶긴다면 제왕으로서 도리라 할 수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적 정부였던 참여정부가 양극화라는 민생 파탄 속에서 백성들의 버림을 받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덕만은 소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생도 챙긴다. 물론 미실도 민생을 챙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둘은 그 스타일이 다르다.

덕만이 챙기는 것은 중소 귀족과 민초들의 생활이다. 미실보다 덕만의 민생 철학이 민초들에게 더욱 이롭다. 미실이 밥을 준다면 덕만은 백성들에게 땅을 주려 한다. 모든 백성을 안정된 자산과 소득원을 가진 중산층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반면에 미실은 배고픈 백성들에게 사재를 털어 쌀을 기부하는 정도이다. 덕만은 백성들에게 강철 농기구라는 강력한 생산 수단도 제공하며, 장기 저리 융자라는 서민 금융까지 지원한다. 미실은 대귀족의 쌀 투기를 방조하지만, 덕만은 이에 철퇴를 가한다. 쌀 투기로 자영농이 귀족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실은 부자 감세를 주장하지만, 덕만은 대귀족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최약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가야 유민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미실은 그들을 삶 터에서 냉혹하게 내치는 반면, 덕만은 그들을 포용하고 살 곳을 마련해준다.

미실이 능력 있는 지도자이기는 하나 백성에게 냉혹하고 대귀족에게 따스한 반면, 덕만은 백성들에게 연민을 가진 온정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대비가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창출하면서 <선덕여왕>을 제왕학의 학습터로 만들어가고 있다. 시청자들이 신국의 제왕으로 미실이 아닌 덕만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이 시대가 원하는 제왕학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겠다.

연민을 부르는 ‘비극적인 영웅’

▲ 미실은 귀족, 화랑 눈치 다 봐가며 두 번의 정변까지 일으키는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
ⓒMBC
미실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미실의 몰락은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착한 주인공이 나쁜 악당을 무찌르니 통쾌하다’라는 단순한 도식이 <선덕여왕>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미실이 비극적인 영웅이기 때문이다.

미실은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는 자이다. 덕만은 성골로 태어난 기득권에, 미실을 누를 것이라는 예언까지 더해 승승장구한다. 덕만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선언 한 번으로 족했다. 반면에 미실은 귀족 눈치, 화랑 눈치 다 봐가며 두 번의 정변까지 일으키는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신분에서 버림받고, 예언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니까.

미실은 눈물을 흘리며 성골로 태어난 덕만이 부럽다고 했다. 자기가 날 때부터 나라의 주인이었다면, 귀족의 사익이 아닌 더 큰 꿈을 꾸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실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실패할 것이 뻔한 투쟁을 전개한다. 자기 자신의 운명에 맞서서. 이것은 영웅의 면모이다.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지만 결국 스러져가는 비극적인 영웅. 시청자들이 정치적으로는 덕만을 지지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미실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