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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

with-akira@hanmail.net 2009. 9. 21. 12:50
촬영 시작 때 72kg→마칠 때 52kg
“시나리오 받고 ‘하면 죽겠다’ 싶었죠”
루게릭병 캐릭터와 고통스런 이별중
한겨레 서정민 기자 이정아 기자
» 영화배우 김명민




영화 촬영 순서는 완성된 영화의 순서와 다른 게 보통이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예컨대, 영화 들머리 귀국 장면과 맨 마지막 출국 장면을 공항에 나간 김에 한꺼번에 찍는 식이다. 하지만 <내 사랑 내 곁에>(박진표 감독)는 그럴 수 없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주인공이 갈수록 야위어간다는 설정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듯 촬영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배우 김명민의 감량이 화제가 된 건 그래서다. 촬영에 앞서 미리 살을 빼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온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돼가는 루게릭병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그는 촬영 기간 내내 몸무게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석 달간의 촬영 뒤 180㎝ 72㎏의 몸이 52㎏까지 빠졌다. 지난 16일 만난 김명민은 10㎏ 남짓 회복한 상태였다. 끼니때가 되자 간단한 죽으로 요기를 했다. “살을 찌운다고 많이 먹으면 속이 견뎌내질 못한다”고 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든 생각은 ‘이거 하면 죽는다’였어요. 연기 욕심이고 도전 의식이고 다 필요없었죠. 근데 왜 했냐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게 있어요. 내 뜻과는 무관하게 안 하면 안 되게끔 상황이 흘러갔죠.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끝났지만, 한번 무리가 갔던 몸은 결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요. 몸은 배우의 가장 큰 자산인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완강히 거부할 거예요. 아니면 잠수를 타든가.”

뜻밖이다. 연기라면 물불 안 가릴 것 같은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아직도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는 ‘초인적인 감량’에만 관심이 모아지는 세간의 분위기를 썩 내켜하지 않는 듯했다. 감량 대신 연기에 대해 묻자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들떴다.


»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연기에서 손과 발은 언어 이상의 도구예요. 손발을 못 쓴다면 절반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생각한 게 못 움직이는 것 자체가 표현이라는 점이었어요. 촬영 한참 전부터 왼발을 절며 걷고 왼손으론 물건을 아예 안 들었어요. 완전히 놓아버린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아 끌어당기는 연습도 하고요. 그런데도 세차하다 넘어지는 장면 찍을 땐 본능적으로 왼손이 올라가더라고요. 참나.”

김명민 하면 흔히 ‘메소드 연기’를 거론한다. 배우가 자아를 완전히 비워내고 극중 인물을 온전히 체화하는 방식이다. 그는 “연기는 무조건 그렇게 해야 된다고 배웠다. 다른 방식은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교수님이 그러셨어요. 배우의 ‘배(俳)’는 사람 인(人)과 아닐 비(非)가 더해진 거라고.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동물이면 동물이 돼야 하고, 전화기면 전화기가 돼야 한다고. 뭘 하든 너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http://blog.paran.com/yukinong99/31494814

그는 촬영 기간 내내 루게릭병 환자 종우로 살았다. 카메라가 비추건 말건 그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웃고 농담하다가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변하는 건 못하겠어요. 평상시 종우로 살아야 카메라가 돌아갈 때 잘할 수 있는 법이죠. 다이어트피부 관리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되는 건 아니잖아요? 평소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는 거지. 연기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그이기에 작품이 끝날 때마다 유독 힘들다. “누군가와 깊은 사랑을 하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이번은 더하다. “촬영장에 가면 다들 반겨주고 몸 걱정 해줬어요.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서울 가면 이 몸 상태로 뭘 하지?’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죠. 지옥 같던 촬영장을 떠나기가 싫었어요. 무기수로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 석방된 사람이 감옥이 그리워 하루 만에 죄 짓고 다시 들어가는 것처럼. 그래도 벗어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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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배우)라는 두 글자는 언제 들어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