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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림회장

입력: 2012-06-27 15:31 / 수정: 2012-06-2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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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슬림’을 벗어날 수 없다.”

멕시코 전문가인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의 조지 그레이슨 교수가 한 말이다. 카를로스 슬림 텔맥스텔레콤 회장이 이끄는 기업들이 멕시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슬림 회장은 세계 최고 부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재산은 685억달러로 추산된다. 우리 돈으로는 무려 80조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재산(약 9조원)보다 9배 가까이 많다. 슬림 회장의 재산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6%를 차지한다. 그가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만도 220개가 넘는다. 건설, 석유, 전기, 자동차, 언론, 담배, 은행, 보험 등 손을 안 댄 곳이 거의 없다. 슬림이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50만명이 넘는다. ‘멕시코인들은 매일 슬림의 주머니에 돈을 꽂아주면서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를 이은 사업가

슬림 회장은 레바논 이민 2세다. 그의 아버지 줄리안 슬림은 1902년 14세 때 레바논 왕정의 강제 징집을 피해 홀로 멕시코에 왔다.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그러나 타고난 사업가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20대 중반 ‘동쪽의 별’이라는 건식품 상점을 차린 줄리안은 30대 때 이미 10만달러가 넘는 돈을 모았다. 배운 것은 없었지만 시장을 읽는 눈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는 ‘규모의 경제’ 개념을 도입, 대형 할인마트를 세웠다.

1940년에 태어난 슬림 회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경영 교육을 받았다. 줄리안은 특히 자녀들에게 재무에 대한 개념을 갖게 하려고 애썼다. 사탕 하나를 사먹어도 지출 내역을 적게 했다. 월말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을 썼는지 분석하도록 시켰다.

슬림 회장은 “젊은 시절 투자와 저축, 분석은 일상과 같았다”고 회상한다. 슬림 회장은 열두살 때 저축한 돈을 직접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다. 슬림 회장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아버지의 교육법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 닥치는 대로 사라”

슬림 회장의 주된 성공요인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것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다. 줄리안은 1910년대 멕시코 혁명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졌을 때 돈을 끌어모아 부동산을 사들였다. 30대 때 전국을 돌며 10여군데의 토지를 사들였다고 한다. 당시 줄리안이 산 부동산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2800만달러에 달한다.

슬림 회장의 전략도 비슷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40만달러를 투자, 보틀링(병에 음료를 넣는 일) 공장을 매입했다. 1976년엔 갈라스 데 멕시코라는 담뱃갑 라벨 인쇄 업체의 지분 60%를 100만달러에 샀다. 여기서 모은 돈으로 1981년 고객사인 담배회사 시가탐을 매입했다.

자잘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워가던 슬림 회장에게 기회가 왔다. 1982년 멕시코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다. 채무 상환을 못한 멕시코 경제는 뿌리째 흔들렸다. 기업들의 자산가치가 떨어지자 슬림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을 사들였다. 1984년엔 보험회사를, 이듬해엔 레스토랑 체인을, 그 다음해엔 광산업체와 자동차 부품 회사를 각각 인수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때 1300만달러를 주고 산 보험사 ‘세구로스 데 멕시코’의 가치는 현재 15억달러가 넘는다.

두 번째 기회는 1990년에 찾아왔다. 재정난을 겪던 멕시코 정부가 국영 전화회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한 것. 슬림 회장은 프랑스텔레콤 등과 재빨리 컨소시엄을 구성, 18억달러를 투자해 인수했다. 훗날 ‘슬림 제국’의 지주회사격인 텔맥스가 되는 이 회사는 전화 수요가 폭증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1990년 500만이었던 회선 수는 현재 1800만까지 늘었다. 매년 60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현재 멕시코 유선전화 시장 점유율이 92%에 이른다. 1990년대 후반 텔맥스의 무선사업부를 분사해 만든 아메리카 모빌은 남미 최대 이동통신사가 됐다. 멕시코에서만 약 4000만명, 남미 전체에서는 1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슬림 회장의 ‘식성’은 여전히 왕성하다.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값이 떨어진 유럽 기업매물 사냥에 나섰다. 지난 15일 오스트리아 통신사인 ‘텔레콤 오스트리아’의 지분 21%를 인수했다. 같은 날엔 아르헨티나 정부가 최근 국유화한 석유기업 YPF의 지분 8%도 샀다. 네덜란드 통신업체 로열KPN의 인수도 거의 마무리 단계다. 그의 아들인 카를로스 슬림 도밋 아메리카 모빌 공동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유럽에 투자할 적기”라며 “슬림 가문은 항상 위기 때 투자해 부(富)를 쌓았다”고 말했다.

○“단어가 아닌 숫자가 언어다”

슬림 회장은 ‘숫자의 천재’로 불린다. 스스로도 “다른 사람은 단어가 언어겠지만, 내겐 숫자가 언어다”라고 말한다. 대학 시절엔 도시공학을 공부하면서 대수와 기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내는 탁월한 감각은 그의 수학적 재능에서 나왔다. 멕시코의 한 언론은 “슬림 회장이 돈을 많이 번 것은 머릿속에서 숫자놀음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의 경영 스타일은 빌 게이츠가 아닌 워런 버핏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독점적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저평가된 기업을 매입해 부를 축적했다는 애기다.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전략도 주효했다. 텔맥스 등 그에게 큰 돈을 가져다준 회사들은 국가 기간사업과 관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슬림 회장은 “멕시코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기간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슬림 회장은 꼭 필요하지만 국가가 재정적인 문제로 짓지 못하는 인프라 시설을 대신 건설해주는 ‘아이디얼(Ideal)’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어려운 남미 국가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재산을 불려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혹도 제기됐다. 텔맥스 인수 당시에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멕시코 대통령과의 친분을 활용, 경쟁자가 써낸 가격을 미리 파악했다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입찰에서 경쟁 컨소시엄과의 가격 차이가 주당 8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입찰가를 알지 않고서는 이런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 하지만 슬림 회장은 “기업가치를 정확히 예측했을 뿐”이라며 일축했다.

수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법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사생활도 깨끗하다. 1999년 부인이 심장병으로 사망했지만, 다른 여성과 스캔들을 낸 적이 없다. 세계 최고 부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검소하다. 30년 넘게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별장이나 요트 같은 것도 없다. “암소가 젖이 많을 때 아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녀들도 이미 세계적인 부자지만, 여전히 매주 월요일엔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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