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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계 인재 블랙홀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

연봉 1억원 직원 300명 키웠어요

기사입력 2012.04.11 08:39:44 | 최종수정 2012.04.11 09:10:29

아버지 53세, 어머니 40세 때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여자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야간중학교에 갔다. 낮에는 회사 사환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 때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듯 했다. 아침마다 미용실에 들러 깻잎 모양으로 앞머리 드라이도 했다. 어릴 적부터 `예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아이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였다. 어느날, 그 날도 어김없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직원에게 잠깐동안 보따리 하나를 좀 맡아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직원은 거절했고 아주머니는 힘없이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아이는 생각했다.

 "나 같으면 친절하게 받아줬을 텐데. 그럼 저 아주머니는 평생 내 단골이 될 텐데. 나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예 내가 미용을 배워보면 어떨까..."

 그 날로 다니던 상고를 그만두고 무궁화기술고등학교로 달려가 미용기술을 배웠다. 악바리 근성은 기술학교에서도 빛이 났다. 틈만 나면 연습에 매달렸던 여자아이는 무궁화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용실에 취직했다. 1년만에 미용사면 누구나 꿈꾼다는 명동 미용실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1년 후, 이번에는 돈암동에 `고추잠자리`라는 자기만의 미용실을 연다. 21살,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학 가서 멋 모르고 멋이나 부릴 나이에 미용실을 내기 위해 사채를 쓰고도 모자라 일수까지 찍었다. 100만원을 빌리면 하루에 1만3000원씩 100일을 갚아야 했다. 엄청난 이자지만, 일수 찍을 때마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헤어디자이너들이 `꿈의 직장`이라 부른다는, 한국 미용계의 대부 박준씨가 `최고 경계해야 할 상대`로 꼽는다는,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의 창업 스토리다.

 준오헤어는 한국 미용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독특한 업체로 꼽힌다. 준오헤어는 가맹점이 전혀 없다. 75개 매장이 모두 직영점이다. "가맹점을 받으면 미용에 애정이 없이 돈만 있는 사람들이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몰려올까봐 그게 두려워 한번도 가맹점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강 대표 설명이다.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기도 쉽지 않다. 미용대학을 졸업하고 준오헤어에 입사하더라도 2년 6개월은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없다. 꼬박 2년 6개월 동안 매장에서 스태프로 잡일을 하면서 준오아카데미에 다니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동안 무조건 100명 이상의 머리를 손질해본 데이터를 입력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연습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강 대표 소신에서 나온 발상이다. 매달 1권씩 강 대표가 정해주는 필독서를 읽고 독서토론회에도 참가해야 한다. 처음엔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간 아카데미에서 수련을 하는 것에 질려 나가는 직원이 부지기수였다. "내가 머리하러 왔지, 책 읽으러 왔냐"며 그만두는 직원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강 대표는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리더가 되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 한다"며 닥달했다.

 이렇게 고된 과정을 이겨내고 드디어 헤어디자이너가 되면 반대로 영광의 나날이 기다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 받으면 땡이었던` 직원 시절이 너무 싫었던 강 대표는 직원들에게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안겨줬다. 일한만큼 월급을 주는 것은 물론, 매장별로 수익의 30~40%를 아낌없이 돌려줬다. 덕분에 준오헤어 소속 1000명의 헤어디자이너 중 연봉이 1억원을 넘어가는 헤어디자이너가 2011년 말 현재 300명에 육박한다. 일 잘하는 헤어디자이너에게는 지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내줬다. 70대 30부터 50대 50까지. 수익은 정확하게 지분율만큼 나눈다. 이런 소사장제 방식은 준오헤어의 매장 당 매출액을 미용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놨다. 2009년 말 준오헤어의 매장 당 평균매출액은 86억원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1위로 올라섰다.

 독특한 준오헤어만의 문화는 10%도 안되는 이직률로 이어졌다. 40~50%가 보통인 미용업계 이직률을 감안하면 거의 `신의 수치`다. 강윤선 대표가 가장 자랑스레 여기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오죽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최고의 길은 준오헤어에 입사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액자에 넣어 자랑스레 대표실에 걸어놨을까.

 "다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세요. 특별한 것 없어요. 그저 직원으로 근무할 때 점장님, 사장님을 보며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했던 것을 하나하나 실천했을 뿐이예요. 예를 들어 미용실 사장님들이 재료상에게 아주 불친절하더라구요. 내게 재료를 갖다주는 고마운 사람인데 왜 친절하게 맞아주지 않을까, 나라면 정말 친절하게 인사도 하고 근황도 묻고 할텐데 싶었지요. 제 매장을 내고 재료상 분들에게 생각했던 대로 했더니 이 분들이 좋은 물건이 나오면 가장 먼저 갖다주시더라구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큰 힘이 됐어요."

 강 대표는 "다 그런 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직원으로 일한 기간이 고작 2년이었지만, 강 대표는 제일 어린 자신이 매장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제일 어린만큼 월급을 늘 제일 작았다. 월급날마다 좌절했다는 강 대표는 자신이 미용실을 운영하게 되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소사장제인 동시에 연봉 1억원 직원 300명이라는 숫자다.

 많이 못 배운 게 속상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길이 보이는 듯 했다. 그 기쁨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직원들도 책을 읽게 했다. 강 대표가 20년 넘게 매달 지정해온 필독서는 리더십, 마케팅, 트렌드에 관한 책 뿐 아니라 경영학과 인문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단순히 읽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느낀 점, 앞으로 내 생활에 접목하고 싶은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한다. 그 과정에서 분명 깨닫는 게 있으면 그만큼 앞으로 나아갈거란 믿음이다.

 그래서일까. 준오헤어 소속 헤어디자이너들은 유독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원 공부 때문에 아카데미 강의에 참석 못 할 것 같다며 죄송해하는 헤어디자이너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오전에 와서 강의 듣고 오후에 대학원 가서 공부해라, 그게 너에게 남는 길이다"라고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큰언니 강윤선 대표가 있기 때문일 터다. 무작정 듣기 좋게 희망 섞인 말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준오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이 미용대학 겸임교수가 될 수 있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도 강 대표 몫이다. 헤어디자이너를 넘어서는 새로운 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꿈이 있는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미용실 1개를 700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미용기업으로 키워낸 강윤선 대표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꾼다.

 청담동 본사 옆에 지상 10층 규모 아카데미를 짓기 위해 설계에 들어갔다. 지금의 준오아카데미가 준오헤어 직원들만을 위한 교육장이었다면 청담동 아카데미는 모든 미용업계 종사자를 위한 아카데미로 개방할 계획이다. 이 곳에서 미용업계 스타 헤어디자이너를 줄줄이 배출해내고 싶다는 게 강 대표가 그리는 새로운 그림이다.

 준오 브랜드로 헤어제품 유통을 해보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1억원 연봉 직원 300명 만들었으니 다음 목표는 1억5000만원 연봉 직원 300명"고도 했다.

 "뉴욕에는 780달러짜리 커트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못 가란 법이 없지요. 청년실업이니 뭐니 다들 난리인데, 대기업에만 목메지 말고 미용업에서 자신의 꿈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기술서비스업 시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술서비스업의 대표 업종 중 하나인 헤어디자이너만큼 유망한 직종이 또 있을까요? 준오에 들어와서 2년 6개월만 열심히 살아보세요. 확실한 미래가 펼쳐질 겁니다."

 

■ 약력 : 1960년생 / 무궁화기술고 / 1981년 준오미용실 성신여대점 개점 / 1990년 비달사순 아카데미 수료 / 1998년 한양대 대학원 경영컨설턴트과정 수료 / 2000년 준오헤어 대표 / 2005년 안양과학대학 겸임교수/ 2008년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2009년 경복대학 겸임교수 / 2011년 서경대 겸임교수

[김소연 기자 /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52호(12.04.11~17일자) 기사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매경이코노미 1652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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