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는 초췌했다 .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母性)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 빵을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 장진성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오늘 이 시 하나 때문에
잠도 들지 못하고
드라마도 쓰지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먹은 밥이 알알이 얹히면서
가슴만 먹먹해 하루가 갑니다.
북한의 가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새로울 것도 없다,
먹먹한 가슴을 감상이라 꾸짖고 글이나 쓰자,
나는 작가다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데,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씬 하나 온전히 쓰질 못합니다.
굶어 죽는 절대 가난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면,
외면해도 되는가?
하루 4,500명씩 죽어가는데
새로울 것 없다고 뒤도는,
이 냉정한 마음은
대체 나의 어느 곳에 숨어서 똬리를 틀고 있다,
이리 민망하고 대책 없이 튀어나오나?
감상이란 지나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사람이 죽어가는데 맘 아픈 것은
지나친 게 아니라 너무도 마땅한 것 아닌가?
나는 작가다, 그런데, 작가란 사람은
사람이 죽든 말든
오직 제 밥벌이 글쓰기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인가?
내가 한 질문에 내가 답을 찾을 수 없어
그만 쓰던 드라마를 접고,
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겨운 사랑타령이라 할 만큼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누구는 끼니 한 그릇이 없는 이 세상은,
세상 생명을 키우는 찬란한 오월 하늘이,
누구는 굶주림에 멍든 시퍼런 가슴 같기만 한 이 세상은,
나눠줄 것 없다,
나 살기도 급급하다 하며,
편한 잠자리에서 잠자는,
자가용을 타는 나와 다름없습니다.
글은 글이고 드라마는 드라마고 사는 건 사는 거지.
말은 말이고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
지 나라 사람은 지 나라 정부가 챙겨야지,
왜 우리한테.
지 애는 지가 키워야지, 왜 남한테.
지들이 잘했어 봐라, 우리가 이러나.
죽는 것도 지들이 선택한 것이지.
말을 하면 할수록, 이 말들은,
끼니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백 원에 딸을 파는 그 여인에게,
애미가 용서해라 통곡하며 건네준 밀가루 빵을
내던지지 못하고 먹는 그 여자애에게,
할 말은 아니다 싶습니다.
다시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드라마처럼 살고 싶습니다.
내 오랜 친구들이여,
내 안의 살벌함을
내 안의 이기심을
내 안의 모자람을
내 안의 이중성을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그러나, 이해했다고 해서 멈추라고는 말아주십시오.
한발 더 가라 해주십시오.
한 번 더 행동하라 해주십시오.
남에게 하던 말을 자신에게 돌리라 해주십시오.
이 글을 쓰다 보니, 밤이 새벽이 되고,
새벽이 낮이 됐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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